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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위대한 행진(고전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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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36 2005.07.1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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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위대한 행진(고전 1:22-25)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바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천 년 전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기피하였고, 헬라인들은 어리석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믿었습니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병종 화백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바보 예수’와 ‘흑색 예수’를 한지와 골판지 등에 많이 그렸습니다. 2004년 가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피와 꽃, 바보 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이 땅에 떨어짐으로 수많은 생명의 꽃을 피워냈다는 내용을 형상화시킨 작품들로 30미터 벽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이번 달 말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는 빛갤러리에서는 ‘다시 보는 바보예수․밀짚광배 예수’가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김병종 화백의 ‘바보 예수’와 김병화 조각가의 ‘밀짚광배 예수’가 나란히 전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예술가들이 보는 예수님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낮추는 바보요, 이 땅의 낮은 자리에 내려와 우리와 함께 고난을 나누는 바보인 것입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했듯이, 이 바보 예수가 깨달은 자들에게는 빛이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길인 것입니다.
이 땅에 임하신 예수님은 왜 바보인가? 남들이 하는 것처럼 위를 향해 행진하지 않고, 아래를 향해 행진하였기 때문에 바보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천상의 영광보좌를 버리고, 죽기 위해 낮은 이 땅에로 임하신 여행자이기 때문에 바보요, 마태의 설명대로, 왕의 신분자로서 마구간의 말구유에 임한 여행자이기 때문에 바보요, 누가가 피력한 것처럼, 잘나고, 지체 높고, 부유한 자들과의 교제를 마다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임하신 여행자이기 때문에 바보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백마 탄 정복자 승리의 왕으로 임하기를 바랐는데도 죽음을 향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여행자이기 때문에 바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했다면, 그렇게 말한 사람은 바보로 취급당하지 않고 배길까요? 또 그 사람이 “너희를 욕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했다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바보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생각되겠습니까? 또 그 사람이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고 말했다면, 또 “겉옷을 뺏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고 말했다면, 또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느 젊은이가 적은 글에서처럼, 낙오자 되기 싫어 저마다 한발자국이라도 더 빨리 올라가기 위해 친구를 끌어내리고 형제를 짓밟는 세상에 예수님은 내려오셨습니다. 움켜쥐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 부모도 친구도 때로는 자식에게도 손을 펴지 않는 세상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셨습니다. 행색을 보아 말 걸고, 배경을 살펴 사람 사귀는 세상에 예수님은 그저 사람이니까 귀하다며 오셨습니다.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사람이면 다 품에 안고, 피 흘려 마시우고, 살 찢어 먹이셨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바보 같은 사랑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인류를 그토록 사랑하신 예수님은 바보가 아닙니까?
이 바보 예수님을 바울은 사람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러시아 민화 가운데, 바보 예수님을 닮아, 바보처럼 여행한 한 젊은 왕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천성에 오르는 진정한 길은 오르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이란 사실을 가슴 저리게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 구유에 임하신 것은 그분이 장차 큰 영광을 받으시게 될 위대한 여행이었다는 역설적 교훈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성탄절 예배가 진정으로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에자르트 샤퍼의 글 가운데, 러시아 민화를 각색한 󰡔위대한 여행 : 별을 따라간 네 번째 왕의 전설󰡕이란 것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무렵, 그 탄생을 알리는 베들레헴의 별이 동방의 세 왕들에게뿐 아니라, 러시아의 한 왕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이 왕은 보통사람들처럼 심성이 여리고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하늘에 별이 나타나, 온 세상을 다스릴 최고 지배자의 출현을 알릴 것이고, 그러면 러시아를 통치하는 왕손은 더 위대한 왕께 신하로서 경배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주인공인 작은 왕은 조상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중대한 사건을 알리는 별이 때마침 자신이 나라를 통치하는 시기에 나타난 것을 무척 기뻐하며, 작은 왕은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은 채, 태어나실 그분께 바칠 예물들만을 정성껏 챙긴 후에 한 마리의 러시아 토종말에 몸을 의지한 채 즉시 길을 떠났습니다.
작은 왕이 준비한 예물은, 러시아 백성들이 풍족하고 바지런하다는 것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제 세상에 오시는 지존하신 분에게 잘 어울리는 것들로써, 질 좋은 아마로 짠 몇 필의 아마포와 몇 장의 부드러운 모피와 러시아에서 나는 사금과 진귀한 보석들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보리수 꿀 한 단지를 준비하였습니다.
작은 왕이 별을 따라 러시아 땅 끝까지 갔지만, 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습니다. 왕은 할 수 없이 국경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낯선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작은 왕은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작은 왕을 이끈 것은 오로지 온 세상을 영원히 다스릴 지존하신 분께 경배하고 싶다는 바람뿐이었습니다. 작은 왕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을만한 진귀한 이국의 풍경과 풍물들이 많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 말고는 한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작은 왕은 집을 떠난 지 두세 달이 되었을 무렵에, 별이 비치는 곳을 좇아 동서고금의 가장 위대한 왕이며, 가장 지혜로운 의사이고, 가장 높은 대제사장인 아기가 태어날 것이니, 그 아기께 예물을 바치고 경배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간다는 동방에서 출발한 세 명의 왕들과 그 시종들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낙타를 타고 있었고, 많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있었습니다.
별이 지고, 그들 일행이 여인숙에 당도했을 때, 작은 왕은 동방의 왕들과 함께 여관방에 들지 못하고, 말에게 여물을 주고 짐과 안장을 내린 다음, 늘 하던 대로 헛간에서 안장을 베개 삼아 외로이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가 잠든 사이에 젊은 여자 거지가 아기를 낳기 위해 슬며시 숨어들었고, 작은 왕이 잠든 사이에 여자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산모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작은 왕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관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가 젊은 엄마에게 주고, 가죽 주머니에서 사금 한 줌을 꺼내 며칠 동안 적선을 받지 못해 텅 빈 동냥자루에 넣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벌거숭이 갓난아기가 너무 가엾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왕은 아마포 한 필을 꺼내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여섯 장의 기저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엄마와 아기가 다가올 밤을 걱정 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전부 취하고 나니 이미 날이 저물었습니다. 작은 왕은 떠날 채비를 한 후에 거지 여인에게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대가 우리나라에 살았더라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요.” 거지 여자가 힘없는 목소리에 대답했습니다. “당신 같은 분이 우리나라의 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저한테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오직 당신을 제 마음의 왕으로 받들어 모실 수 있을 뿐이지요.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을 왕으로 받들겠어요.”
작은 왕은 흐뭇하여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위대한 만인의 왕께 바칠 황금과 아마포를 조금 떼어주었지만, 그 대가로 지금 이 낯선 곳에서 내 나라를 얻지 않았는가. 이런 마음의 나라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닐 거야. 위대한 왕께서 부디 나를 용서해주셨으면 좋으련만.“
그가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동방의 왕들과 그 일행들은 벌써 길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작은 왕은 자신이 큰 실수를 범한 것 같기도 했으나, 마음을 다잡고서, 거지 여인과 아기를 여관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서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 작은 왕은 동방에서 출발한 세 명의 왕들과 그 일행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 대신에 헛간에서 아기를 낳은 거지 여인처럼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그 때마다 그는 위대한 왕께 드릴 예물들을 조금씩 떼어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의 말을 들으면, 자신이 아니라 새로 오시는 위대한 분이 그 말을 들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위대한 왕에게 바치기 위해서 준비한 황금과 보석들은 불쌍한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는데, 나병환자들을 돕는데,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하는데, 동상에 걸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돕는데 쓰였으므로, 작은 왕이 러시아를 떠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는 가져간 모든 것이 바닥나고 말았고, 시간은 점점 지체되어 갔으며, 더 이상 별도 나타나지 않았고, 위대한 왕을 만나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말도 지쳐서 죽게 되었고, 보리수 꿀도 꿀벌들의 공격을 심하게 받아 다 빼앗기는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작은 왕이 한 해변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봐서는 안 될 대단히 난폭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죄인과 노예들이 노를 젓는 갈레선 한 척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선주가 어떤 어머니의 어린 자식을 빚을 남기고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갈레선에 태워서 노를 젓는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불쌍한 작은 왕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모른 체를 하지 못하고, 불쌍한 과부의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자진하여 갈레선에 타게 됩니다. 작은 왕은 그 후로 30년 동안을 이 갈레선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로 노를 젓다가 거의 죽게 되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서야 30년 전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던 바로 그 항구에 내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항구에 버려진 작은 왕을 구해서 치료를 해 준 사람은 어느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그가 바로 30년 전에 작은 왕이 그를 대신해서 갈레선을 탔던 과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서 갈레선에서 버려진 불쌍한 사람들을 억지로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몸이 회복되자마자 작은 왕은 30년 전에 별을 따라 걷었던 그 길을 더듬어 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왕은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큰 축제에 참석하려고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지나 여행하는 무리들 속에 끼게 되고, 그 무리들 틈 속에서 한 거지 노파를 만나게 됩니다. 그 노파와 자주 부딪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노파가 바로 자신이 30년 전에 헛간에서 돌봐주었던 산모였던 것입니다. 이 거지 노파가 작은 왕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습니다. “전혀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오. 적선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뭔가 받는 것을 알지요.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오.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지요.” “거지가 적선을 베푼 은인한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단 말이오?” 늙은 여인이 말합니다. “그야, 자신한테 있는 모든 걸 주어야지요.... 적선을 베푼 사람에게 돈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다른 것을 줄 수는 있다오. 따스한 눈빛이라든지, 말 한 마디 같은 것 말이지요. 상대방의 마음과 가슴을 밝게 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 아니면 양심의 짐을 덜어주는 것, 그런 것은 많지요....”
노파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갑니다. 30년 전에 헛간에 숨어들어 아기를 낳고 심히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때에 자기를 극진히 돌봐준 한 남정네에게 자신의 마음을 주었고, 그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으며, 그 이후로도 자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주 착하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해 했으며, 날마다 그 행복을 맛보고, 30년 동안 마음속으로 환호하며 그분에게 신의를 바쳤고, 여전히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노라고 고백합니다.
작은 왕은 눈물 고인 눈으로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며, 비로소 자신이 그때 그 여인이 헛간에서 약속했던 마음의 왕국을 30년 동안 소유하고 있었고, 동서고금의 가장 위대한 왕의 신하가 되는 것도, 러시아의 왕좌에 않을 자격도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자신이 그동안 언제나 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왕은 몰랐지만, 그가 밤을 지새운 곳이 다름 아닌 그가 그토록 30년 넘게 만나보기를 원했던 그 위대한 왕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기도했던 그 동산이었고, 그 다음 날 작은 왕은 드디어 그가 30년 넘게 그토록 고생하며 찾아 헤맸던 그 위대한 왕이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합니다.
이제 늙고 지쳐버린 네 번째 왕, 러시아의 작은 왕은 가시관을 쓰신 자신의 주군 앞에 서게 되었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시선을 받게 됩니다. 그 순간 작은 왕은 심장의 고동이 멈춰서면서 참으로 행복한 순간을 맞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리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쇠갈퀴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숨을 조여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왕께 바치려고 했던 것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은 왕은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황금, 보석, 아마포, 모피, 심지어는 어머님이 단지에 가득 담아주신 꿀마저 모두 허비하고 낭비했습니다. 왕이시여, 용서하소서!”
그 순간 30년 전에 자신의 왕국으로 선사받은 거지 여인의 마음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 왕이시여, 저의 마음을.... 그리고 그 여인의 마음을..... 저희들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탄생하신 그리스도께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분으로부터 무엇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분에게 드리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들이 하는 수고가 모두 허사가 되고 맙니다. 마음을 주고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은 아래로의 행진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에는 아래로의 행진이 어리석은 바보들의 행진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가치관에서 볼 때에는 위대한 행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들 바보들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요, 깨달은 자들이요, 눈뜬 자들인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이 성도님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복된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와 위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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