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오신 예수(엡 2:8)
본문
선물로 오신 예수(엡 2:8)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지극히 작은 선물들,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 건축헌금 등은 대다수 드리는 사람들이 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전제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뇌물성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전혀 우리에게 빚진 것도 없고, 그리 해야 할 의무도 없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그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을 찾을 수 없는 선물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영생이란 구원을 주시기 위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도 없고,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위대한 선물을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주셨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남편의 선물, 부인의 선물, 자녀들의 선물, 부모님의 선물, 여러분이 작성하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한 목록 속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을 위한 선물은 포함되어 있습니까?
받는 사람에게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받는 사람이 마음에 매우 흡족해 할 선물은 무엇일까요? 어떤 선물이 가장 값진 선물일까요? 작지만 정성이 들어간 선물, 작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 이런 선물이 값진 선물이 아닐까요? 여기서 잠시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의 한 토막을 들어봅시다.
“델러(Della),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그래요, 짐(Jim). 잘라서 팔았어요. 팔아 버렸어요. 팔아서 이젠 없어요. 오늘밤은 크리스마스이브예요.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판 거니까요. 제 머리카락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세어주셨다고 믿어요(마 10:30). 하지만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셀 수 없어요. 짐, 고기를 불에 얹을까요?”
“델러, 오해하지 말아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깎았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 상자를 열어 봐요. 그러면 내가 왜 아까 잠시 머뭇거렸는지를 알게 될 거에요.”
델러는 남편이 선물한 머리빗을 가슴에 꼭 안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웃으면서 말합니다. “짐, 제 머리카락은 아주 빨리 자라요.”
델러는 남편을 위해서 마련한 시곗줄을 꺼내 보이며 말합니다. “짐, 어때요? 멋지죠? 거리를 온통 다 뒤져서 찾아냈어요. 이제부터는 하루에 시간을 백 번도 더 보고 싶을 거예요. 당신 시계 줘 보세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어요.”
“델러, 우리가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분간 잘 간수해두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고급이에요. 당신에게 줄 머리빗을 사느라 시계를 팔았어요. 자, 고기를 불에 올려놓읍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배우자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기위해 각자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내다 팔수밖에 없었던 한 가난한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짐과 델러는 부부입니다.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서로를 지극하게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이들 부부는 고민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인 짐은 애지중지하던 시계를 팔아 부인에게 고급 머리빗을 선물합니다. 아리따운 긴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쓸 만한 빗이 없던 부인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한편 부인 델러는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합니다. 쓸 만한 시계였지만 시곗줄이 없어서 차고 다닐 수가 없었던 것이어서 남편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무언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을 팔아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아픔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른 부인에게는 머리빗이 소용없고, 시계를 팔아버린 남편에게는 시곗줄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머리카락이 곧 다시 자랄 것이라고 남편을 위로했고, 남편 또한 조촐하지만 둘만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고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大戰) 후 독일문학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26세에 요절한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1947)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쓴 단편 가운데 “어둠 속의 세 박사”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파괴된 도시가 을씨년스럽던 때의 일입니다.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방안에 허연 김이 서릴 정도로 몹시 추운 밤이었습니다. 이 추운날 밤에, 그것도 차디찬 방에서 한 시간 전에 한 여인이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나무토막 몇 개를 어렵게 주어다가 빈 난로에 넣고 불을 지폈습니다. 잠깐 있다 꺼질 이 난로 불에 아이의 얼굴이 비췹니다. 아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산모는 굶고 떨면서도 안심을 합니다.
이때 세 사람의 불청객이 불쑥 문을 열어젖히고 집안으로 들이닥칩니다. 불빛을 보고 언 몸을 녹일 수 있을까하여 찾아든 부상당한 패잔병들이었습니다. 그 잘난 난로 불이 이들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 사람은 방안의 실존, 어둡고 춥고 허기진 현실을 확인합니다.
세 사람 가운데 동상에 걸려 두 팔을 잃게 된 부상병이 약간의 엽초담배를 주머니 깊숙이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게 하여 종이에 말아서 한 모금씩 돌려가며 태웁니다. 담배 한 모금이 절실했던 애기 아빠에게는 더없이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못 먹어 부황이 난 다른 부상병은 일곱 달 동안이나 공들여 깎아 만든 당나귀 목각을 태어난 새 아기를 위해 선물로 꺼내놓습니다.
신경증에 걸려 몸을 덜덜 떠는 또 한사람은 아껴오던 알사탕 두 알을 털어서 출산 후 물 한 모금 못 마신 산모의 입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세 패잔상이군인들은 허리를 굽혀 갓난아기를 내려다봅니다. 아직 타고 있는 난로의 불빛으로 인해서 갓난아기의 얼굴에서 마치 성스러운 빛이 반사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 잠들었나 싶었던 아기가 깨어나 두발을 힘차게 차대면서 울어댑니다.
어둠 속의 세 사람은 문을 열고 집을 빠져나갑니다. 어둡고 춥고 허기진 상태에서 아기를 갖게 된 가련한 이 부부는 이 밤을 거룩한 밤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것들을 털어놓고 나간 세 사람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네요.” 산모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바로 그날이 성탄절이브였던 것입니다(Wolfgang Borchert, 채희문역, 「어둠 속의 세 박사」, 갈등과 밤과 별: 작가정신 세계문학 시리즈①, 작가정신사, 1987, pp. 184-187).
못 먹어 부황이 난 사나이가 그동안 빵과 바꾸지 않고 배낭 깊숙이 찔러 뒀던 당나귀 목각을 아기를 위해 내놓은 것은 그로써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바친 황금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아기의 부모는 그것을 팔아서 우선 급한 대로 아기에게 먹일 우유를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동상으로 두 팔을 잃은 패잔병에게 약간의 엽초담배는 그가 가진 것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담배를 팔 달린 사람에 의해 꺼내게 하여 그들과 함께 태웠습니다. 아기 아빠에게도 한 모금 빨게 하였습니다. 이 때 한 모금담배의 선물은 동방박사가 내놓은 유향선물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신경증에 걸려 몸을 덜덜 떨던 부상병에게 알사탕 두 알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껴오던 알사탕 두 알을 출산 후 물 한 모금 못 마신 산모의 입에 넣어준 것은 동방박사가 바친 몰약선물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알사탕 두 알이 지치고 허기진 산모의 목숨을 구해냈는지도 모르니까요.
볼프강 보르헤르트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 부상당한 패잔병들이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털어 바친 것을 뜻합니다. 이것만은 안 되겠다고 깊숙이 넣어뒀던 최후의 것들조차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에게 있어서 세 명의 부상당한 패잔병들은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고 경배한 동방박사 세 사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 거주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점성가들로서 당대 최고의 물품인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예수님께 선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르헤르트의 「어둠 속의 세 박사」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점에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최상의 것,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단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지치고 허기진 우리 인간들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진 최상의 것, 히든카드로 최후까지 숨겨뒀던 비장의 것,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거듭날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물었을 때, 백이면 백 사람의 대답은 모두가 제각각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귀한 선물’에 대한 생각은 상대적입니다. 이 말은 ‘가장 귀한 선물’이 사람에 따라서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거꾸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선물’이란 모두가 다 가짜란 것입니다. 진정으로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 못 된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것입니다.
「어둠 속의 세 박사」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우리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희망’이란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절망의 폐허에서도 희망의 싹은 돋아나듯이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새 생명에 우리가 가진 최후의 것조차 끄집어내어 이 새 생명을 위해서 바쳐도 좋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린 가장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새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희망이요, 등불입니다.
또 한 가지 「어둠 속의 세 박사」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우리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약속’이란 것입니다. 새 생명은 미래의 약속입니다. 폐허 속에서 핀 새 생명은 미래의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 새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미래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요,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서 멸망의 도시를 빠져 나온 그리스도인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꾸준히 왕의 길(King's Way)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고달프고 험한 길이어서 그리스도인은 좀 쉬워 보이는 길로 방향을 바꿉니다. 하지만 그 길은 ‘의심의 성’에 살고 있는 ‘절망’이란 거인의 영토로 이어진 길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절망’에게 사로잡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온갖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을 괴롭히던 ‘절망‘은 그에게 자살까지 종용합니다. 그러면서 천성을 향한 순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꼬드깁니다. 한동안은 정말로 그 절망이란 거인이 그리스도인을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리스도인과 함께 잡혀 있던 ’희망‘이란 동료가 그에게 값진 승리의 순간들을 기억나게 해줍니다. “그동안 당신은 참으로 용감했어요. 그 무시무시한 아폴뤼온(Apollyon/무저갱의 악령)과도 싸워 이겼고, 죽음의 그늘 계곡에서도 허영의 시장에서도 당신은 참 용감했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리스도인은 불현듯 이렇게 외칩니다. “맙소사!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지하 감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니. 여보시오. 희망, 내 가슴 속엔 약속이라는 열쇠가 있다오! 그 열쇠는 어떤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인데 이 의심의 성에 있는 자물쇠도 열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희망’이 말합니다. “그것 참 굉장한 뉴스군요! 어서 당신의 가슴 속에서 그 열쇠를 꺼내어 자물쇠에 꽂아 보세요!” 잠시 후 그들은 의심의 성을 무사히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류에게 새 생명을 위한 희망이요, 영생에 대한 약속이란 점에서, 또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할 임마누엘 하나님이란 점에서 가장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됩니다. 이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선물도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우리가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하고 부상당한 처절한 몰골의 신세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께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 최후까지 숨겨뒀던 비장의 것을 꺼내어 그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놓아야한다는 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의 말씀은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선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맞이하십시다. 그분에게 우리의 진심이 담긴 예물을 드립시다. 성탄 절기를 맞이한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지극히 작은 선물들,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 건축헌금 등은 대다수 드리는 사람들이 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전제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뇌물성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전혀 우리에게 빚진 것도 없고, 그리 해야 할 의무도 없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그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을 찾을 수 없는 선물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영생이란 구원을 주시기 위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도 없고,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위대한 선물을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주셨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남편의 선물, 부인의 선물, 자녀들의 선물, 부모님의 선물, 여러분이 작성하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한 목록 속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을 위한 선물은 포함되어 있습니까?
받는 사람에게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받는 사람이 마음에 매우 흡족해 할 선물은 무엇일까요? 어떤 선물이 가장 값진 선물일까요? 작지만 정성이 들어간 선물, 작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 이런 선물이 값진 선물이 아닐까요? 여기서 잠시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의 한 토막을 들어봅시다.
“델러(Della),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그래요, 짐(Jim). 잘라서 팔았어요. 팔아 버렸어요. 팔아서 이젠 없어요. 오늘밤은 크리스마스이브예요.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판 거니까요. 제 머리카락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세어주셨다고 믿어요(마 10:30). 하지만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셀 수 없어요. 짐, 고기를 불에 얹을까요?”
“델러, 오해하지 말아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깎았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 상자를 열어 봐요. 그러면 내가 왜 아까 잠시 머뭇거렸는지를 알게 될 거에요.”
델러는 남편이 선물한 머리빗을 가슴에 꼭 안고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웃으면서 말합니다. “짐, 제 머리카락은 아주 빨리 자라요.”
델러는 남편을 위해서 마련한 시곗줄을 꺼내 보이며 말합니다. “짐, 어때요? 멋지죠? 거리를 온통 다 뒤져서 찾아냈어요. 이제부터는 하루에 시간을 백 번도 더 보고 싶을 거예요. 당신 시계 줘 보세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어요.”
“델러, 우리가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분간 잘 간수해두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고급이에요. 당신에게 줄 머리빗을 사느라 시계를 팔았어요. 자, 고기를 불에 올려놓읍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배우자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기위해 각자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내다 팔수밖에 없었던 한 가난한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짐과 델러는 부부입니다.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서로를 지극하게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이들 부부는 고민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인 짐은 애지중지하던 시계를 팔아 부인에게 고급 머리빗을 선물합니다. 아리따운 긴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쓸 만한 빗이 없던 부인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한편 부인 델러는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합니다. 쓸 만한 시계였지만 시곗줄이 없어서 차고 다닐 수가 없었던 것이어서 남편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었습니다.
무언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을 팔아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아픔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른 부인에게는 머리빗이 소용없고, 시계를 팔아버린 남편에게는 시곗줄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머리카락이 곧 다시 자랄 것이라고 남편을 위로했고, 남편 또한 조촐하지만 둘만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고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大戰) 후 독일문학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26세에 요절한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1947)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쓴 단편 가운데 “어둠 속의 세 박사”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파괴된 도시가 을씨년스럽던 때의 일입니다.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방안에 허연 김이 서릴 정도로 몹시 추운 밤이었습니다. 이 추운날 밤에, 그것도 차디찬 방에서 한 시간 전에 한 여인이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나무토막 몇 개를 어렵게 주어다가 빈 난로에 넣고 불을 지폈습니다. 잠깐 있다 꺼질 이 난로 불에 아이의 얼굴이 비췹니다. 아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산모는 굶고 떨면서도 안심을 합니다.
이때 세 사람의 불청객이 불쑥 문을 열어젖히고 집안으로 들이닥칩니다. 불빛을 보고 언 몸을 녹일 수 있을까하여 찾아든 부상당한 패잔병들이었습니다. 그 잘난 난로 불이 이들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 사람은 방안의 실존, 어둡고 춥고 허기진 현실을 확인합니다.
세 사람 가운데 동상에 걸려 두 팔을 잃게 된 부상병이 약간의 엽초담배를 주머니 깊숙이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게 하여 종이에 말아서 한 모금씩 돌려가며 태웁니다. 담배 한 모금이 절실했던 애기 아빠에게는 더없이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못 먹어 부황이 난 다른 부상병은 일곱 달 동안이나 공들여 깎아 만든 당나귀 목각을 태어난 새 아기를 위해 선물로 꺼내놓습니다.
신경증에 걸려 몸을 덜덜 떠는 또 한사람은 아껴오던 알사탕 두 알을 털어서 출산 후 물 한 모금 못 마신 산모의 입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세 패잔상이군인들은 허리를 굽혀 갓난아기를 내려다봅니다. 아직 타고 있는 난로의 불빛으로 인해서 갓난아기의 얼굴에서 마치 성스러운 빛이 반사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 잠들었나 싶었던 아기가 깨어나 두발을 힘차게 차대면서 울어댑니다.
어둠 속의 세 사람은 문을 열고 집을 빠져나갑니다. 어둡고 춥고 허기진 상태에서 아기를 갖게 된 가련한 이 부부는 이 밤을 거룩한 밤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것들을 털어놓고 나간 세 사람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네요.” 산모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바로 그날이 성탄절이브였던 것입니다(Wolfgang Borchert, 채희문역, 「어둠 속의 세 박사」, 갈등과 밤과 별: 작가정신 세계문학 시리즈①, 작가정신사, 1987, pp. 184-187).
못 먹어 부황이 난 사나이가 그동안 빵과 바꾸지 않고 배낭 깊숙이 찔러 뒀던 당나귀 목각을 아기를 위해 내놓은 것은 그로써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바친 황금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아기의 부모는 그것을 팔아서 우선 급한 대로 아기에게 먹일 우유를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동상으로 두 팔을 잃은 패잔병에게 약간의 엽초담배는 그가 가진 것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담배를 팔 달린 사람에 의해 꺼내게 하여 그들과 함께 태웠습니다. 아기 아빠에게도 한 모금 빨게 하였습니다. 이 때 한 모금담배의 선물은 동방박사가 내놓은 유향선물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신경증에 걸려 몸을 덜덜 떨던 부상병에게 알사탕 두 알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껴오던 알사탕 두 알을 출산 후 물 한 모금 못 마신 산모의 입에 넣어준 것은 동방박사가 바친 몰약선물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알사탕 두 알이 지치고 허기진 산모의 목숨을 구해냈는지도 모르니까요.
볼프강 보르헤르트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 부상당한 패잔병들이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털어 바친 것을 뜻합니다. 이것만은 안 되겠다고 깊숙이 넣어뒀던 최후의 것들조차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에게 있어서 세 명의 부상당한 패잔병들은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고 경배한 동방박사 세 사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 거주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점성가들로서 당대 최고의 물품인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예수님께 선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르헤르트의 「어둠 속의 세 박사」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점에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최상의 것,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단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지치고 허기진 우리 인간들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진 최상의 것, 히든카드로 최후까지 숨겨뒀던 비장의 것,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거듭날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물었을 때, 백이면 백 사람의 대답은 모두가 제각각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귀한 선물’에 대한 생각은 상대적입니다. 이 말은 ‘가장 귀한 선물’이 사람에 따라서 제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거꾸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선물’이란 모두가 다 가짜란 것입니다. 진정으로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 못 된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것입니다.
「어둠 속의 세 박사」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우리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희망’이란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절망의 폐허에서도 희망의 싹은 돋아나듯이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새 생명에 우리가 가진 최후의 것조차 끄집어내어 이 새 생명을 위해서 바쳐도 좋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린 가장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새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희망이요, 등불입니다.
또 한 가지 「어둠 속의 세 박사」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우리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약속’이란 것입니다. 새 생명은 미래의 약속입니다. 폐허 속에서 핀 새 생명은 미래의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 새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미래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요,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서 멸망의 도시를 빠져 나온 그리스도인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꾸준히 왕의 길(King's Way)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고달프고 험한 길이어서 그리스도인은 좀 쉬워 보이는 길로 방향을 바꿉니다. 하지만 그 길은 ‘의심의 성’에 살고 있는 ‘절망’이란 거인의 영토로 이어진 길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절망’에게 사로잡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온갖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을 괴롭히던 ‘절망‘은 그에게 자살까지 종용합니다. 그러면서 천성을 향한 순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고 꼬드깁니다. 한동안은 정말로 그 절망이란 거인이 그리스도인을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리스도인과 함께 잡혀 있던 ’희망‘이란 동료가 그에게 값진 승리의 순간들을 기억나게 해줍니다. “그동안 당신은 참으로 용감했어요. 그 무시무시한 아폴뤼온(Apollyon/무저갱의 악령)과도 싸워 이겼고, 죽음의 그늘 계곡에서도 허영의 시장에서도 당신은 참 용감했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리스도인은 불현듯 이렇게 외칩니다. “맙소사!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지하 감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니. 여보시오. 희망, 내 가슴 속엔 약속이라는 열쇠가 있다오! 그 열쇠는 어떤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인데 이 의심의 성에 있는 자물쇠도 열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희망’이 말합니다. “그것 참 굉장한 뉴스군요! 어서 당신의 가슴 속에서 그 열쇠를 꺼내어 자물쇠에 꽂아 보세요!” 잠시 후 그들은 의심의 성을 무사히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류에게 새 생명을 위한 희망이요, 영생에 대한 약속이란 점에서, 또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할 임마누엘 하나님이란 점에서 가장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됩니다. 이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선물도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우리가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하고 부상당한 처절한 몰골의 신세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께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 최후까지 숨겨뒀던 비장의 것을 꺼내어 그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놓아야한다는 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의 말씀은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선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맞이하십시다. 그분에게 우리의 진심이 담긴 예물을 드립시다. 성탄 절기를 맞이한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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