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신 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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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신 6:20-25)
이스라엘 민족은 수치스런 과거사를 잊지 않고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에 이집트인들의 노예였었다고 말입니다. 최근에 일본의 우익 인사들의 역사왜곡에 관한 발언이 극에 달하고 있고, 잘못 쓰인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대한성서공회의 민영진 박사가 1982년에 쓴 칼럼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20-25절을 본문으로 “우리는 일본의 노예였었다. 우리는 왜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전승시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분이 쓴 글을 참고로 ‘해방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이란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과거역사를 숨기지 않고 자녀들에게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교훈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20-25절은 먼 훗날 곧 이집트 탈출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최초의 해방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던 후손들이 부모들에게 출애굽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계명들이 무슨 뜻인가를 물어온다면 부모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옛적에 자기들은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지냈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거기서 인도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셨고 법을 주어 지키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일라주라는 것입니다.
성서시대의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혀가던 다윗시대나 화려했던 솔로몬 시대의 역사보다는 수치스러웠던 이집트에서의 종살이 역사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당한 수모와 학대와 노예의 신분으로 감당해야 했던 강제노역의 역사는 벌써 오래 전에 이집트의 역사에서는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제국주의 정권은 히브리 노예들을 도시건설에 투입시켰던 강제노역의 역사나 히브리인 갓 난 사내아이들을 나일강에 빠뜨려 죽었던 끔직한 인구박멸정책 같은 것들을 자기들의 역사 기록에서 일찍이 삭제하였거나 아예 처음부터 기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에게 왜곡된 역사를 고치라거나 삭제된 부분을 집어넣으라고 항의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그때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자손손 전승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온 세월이 무려 3,400년이나 되었습니다. 해마다 춘분이 지난 보름날 저녁이면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는 그들이 ‘쎄데르’라 부르는 유월절 예식을 갖습니다.
먼저 모두들 자리에 앉으면 그 집 어른은 포도주 잔을 채워들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 포도주를 내신 창조주를 찬양하세.”라는 내용의 사례를 하여 그날 저녁에 마실 포도주를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다음에는 흰 보자기로 덮여 있는 누룩 없는 밀가루 과자 하나를 들고 둘로 쪼개면서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먹던 고난의 빵이다. 배고픈 사람들아, 다 이 식탁에 둘러않아 유월절 만찬을 들자.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포도주와 무교병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나면 곧이어 아이들이 부모들을 향해, “예삿날 밤에는 누룩 있는 빵이든 누룩 없는 빵이든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누룩 없는 것만 먹고, 예삿날 밤에는 아무 나물이나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쓴나물만 먹고, 예삿날 밤에는 쓴나물을 그냥 먹는데 오늘 밤에는 그 쓴나물이 더욱 쓰도록 쓰디쓴 양념에다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찍어서 먹는데, 오늘 밤이 다른 예삿날 밤과는 어떻게 다릅니까?”라고 노래로 묻습니다. 이 노래가 끝나면 그 집 어른은 “우리는 옛적에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과 편 팔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라고 일러줍니다.
우리는 지금 일본에게 지난 세기로부터 금세기에 이르기까지의 한일관계의 역사를 바르게 쓰라고 항의하고 있고,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부러진 그들의 역사를 쓰는 인식이 올바른 인식으로 고쳐져서 왜곡된 사실이 바로잡히게 될는지는 참으로 의문입니다. 우리 국민의 이런 외침과 요구가 있는지는 벌써 수십 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과거역사를 숨기지 않고, 해방과 관련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제합방이 되던 1910년 11월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역사책들을 불태워버렸으며, 1922년부터는 ‘조선사편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우리 역사를 왜곡해서 썼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일본인 학자들이 기록한 우리역사는 우리 민족의 열등성과 후진성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고 우리의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구실을 삼고, 그들의 통치를 합리화하려고 감행한 역사 왜곡일 것입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고 자기들이 그나마 우리를 보호하고 통치해 주었기 때문에 식민치하에서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는 왜곡된 사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제 때 일본에 유학했던 유학생들 가운데 일본인 역사가들이 조작한 조선사를 읽고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져 자살한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사의 비극의 한토막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불행했던 역사를 올바로 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일본의 노예였었다.’는 이 기막힌 역사를 되풀이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흔적과 증거를 폐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우리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망각’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민족성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부각시켜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야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이야기가 매우 길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인간성이란 면에서 야곱은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이 많지 않은 인물인데, 창세기 저자는 왜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야곱을 더 많이 소개하였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야곱의 삶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삶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척박한 삶의 현실을 전투적으로 바꿔가는, 바꿔 말하면 불모지를 옥토를 바꿔가는, 사막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꿔가는 그런 특이한 모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민족성에 가장 어울리는 유태인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야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쟁취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언제나 맨주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제몫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생으로 태어났고, 언제나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싸워서 제몫을 만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에서보다 늦게 이 땅에 첫발을 디딘 것처럼 주변국들에 비해서 그 출발이 상당히 늦었던 민족이었습니다. 세상에 늦게 나온 만큼 제몫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입성 후에 차지한 땅들도 대부분이 타민족이 쓸모없어서 내버린 땅이었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아무개의 발꿈치를 붙잡다’라는 관용구에서 나온 이름인데,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자기이익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붙잡고 씨름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나서야 천사를 놓아준, 그러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얻은 이름입니다. 누구하고든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야곱, 형 에서하고도 싸워야 했고, 아버지 이삭과도 싸워야 했고, 외삼촌 라반과도 싸워야 했고, 심지어 하나님과도 싸워야 했던 야곱이었습니다. 싸우지 않고서는 제몫을 차지할 수 없었던 야곱은 바로 오늘날 유태인이 누군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랑자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결국 80여명의 식솔을 거느린 거부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2,610년 전부터 남의 나라에서 방랑하기 시작했고, 주후 70년 이후부터는 무려 1878년간을 모든 유태인이 남의 나라에서 얹혀사는 자들이었지만, 1948년 건국이후에는 우리 대한민국보다 두 배나 더 잘사는 강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총칼을 손에 들고 이웃 아랍연맹과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했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일생처럼 굴곡진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끄러운 민족성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부각시켜왔습니다.
셋째, 척박한 환경과 험난한 세월을 산 야곱의 삶도, 불행한 역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세월도, 불행한 세월이었기보다는 오히려 축복의 세월이었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갖는 역사인식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의 삶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신명기 6장 20-25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21절),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급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신 분‘(22절),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신 분‘(23절), 그리고 ’모든 율법을 잘 지키라고 명령하신 분‘(24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확고한 믿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성격과 같은 부끄러운 민족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 민족의 후손들을 가르쳐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부끄러운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고, 해방을 주신 민족이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3,400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해방도 그렇고, 57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건국도 하나님이 그들 민족에게 주신 축복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였다면, 그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민족이었다면, 그 민족은 결코 부끄러운 민족이 아니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성과 역사를 대표하는 야곱의 생애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생애였기에 결코 부끄러운 생애일 수 없다는 것이 창세기를 기록한 저자의 역사인식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집니다. 일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무엇이라고 기록하든지 간에, 우리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작용했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하셨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닙니다.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시킨 우리의 민족성은, 세계인들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결코 부끄러운 민족성이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은 유태인 못지않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지난날의 역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뒷거름질치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이사야 2장 22절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존권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의 팔과 그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유태인들이 과거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야곱이 라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몫을 철저하게 챙겨 거부가 되었듯이, 유태인들은 국제사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끊임없는 자기능력개발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과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짐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치스런 과거사를 잊지 않고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에 이집트인들의 노예였었다고 말입니다. 최근에 일본의 우익 인사들의 역사왜곡에 관한 발언이 극에 달하고 있고, 잘못 쓰인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대한성서공회의 민영진 박사가 1982년에 쓴 칼럼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20-25절을 본문으로 “우리는 일본의 노예였었다. 우리는 왜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전승시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분이 쓴 글을 참고로 ‘해방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이란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과거역사를 숨기지 않고 자녀들에게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교훈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6장 20-25절은 먼 훗날 곧 이집트 탈출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최초의 해방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던 후손들이 부모들에게 출애굽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계명들이 무슨 뜻인가를 물어온다면 부모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옛적에 자기들은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지냈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거기서 인도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셨고 법을 주어 지키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일라주라는 것입니다.
성서시대의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혀가던 다윗시대나 화려했던 솔로몬 시대의 역사보다는 수치스러웠던 이집트에서의 종살이 역사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당한 수모와 학대와 노예의 신분으로 감당해야 했던 강제노역의 역사는 벌써 오래 전에 이집트의 역사에서는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제국주의 정권은 히브리 노예들을 도시건설에 투입시켰던 강제노역의 역사나 히브리인 갓 난 사내아이들을 나일강에 빠뜨려 죽었던 끔직한 인구박멸정책 같은 것들을 자기들의 역사 기록에서 일찍이 삭제하였거나 아예 처음부터 기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에게 왜곡된 역사를 고치라거나 삭제된 부분을 집어넣으라고 항의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그때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자손손 전승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온 세월이 무려 3,400년이나 되었습니다. 해마다 춘분이 지난 보름날 저녁이면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는 그들이 ‘쎄데르’라 부르는 유월절 예식을 갖습니다.
먼저 모두들 자리에 앉으면 그 집 어른은 포도주 잔을 채워들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 포도주를 내신 창조주를 찬양하세.”라는 내용의 사례를 하여 그날 저녁에 마실 포도주를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다음에는 흰 보자기로 덮여 있는 누룩 없는 밀가루 과자 하나를 들고 둘로 쪼개면서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먹던 고난의 빵이다. 배고픈 사람들아, 다 이 식탁에 둘러않아 유월절 만찬을 들자.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포도주와 무교병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나면 곧이어 아이들이 부모들을 향해, “예삿날 밤에는 누룩 있는 빵이든 누룩 없는 빵이든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누룩 없는 것만 먹고, 예삿날 밤에는 아무 나물이나 먹을 수 있는데 오늘 밤에는 오직 쓴나물만 먹고, 예삿날 밤에는 쓴나물을 그냥 먹는데 오늘 밤에는 그 쓴나물이 더욱 쓰도록 쓰디쓴 양념에다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찍어서 먹는데, 오늘 밤이 다른 예삿날 밤과는 어떻게 다릅니까?”라고 노래로 묻습니다. 이 노래가 끝나면 그 집 어른은 “우리는 옛적에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과 편 팔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라고 일러줍니다.
우리는 지금 일본에게 지난 세기로부터 금세기에 이르기까지의 한일관계의 역사를 바르게 쓰라고 항의하고 있고,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부러진 그들의 역사를 쓰는 인식이 올바른 인식으로 고쳐져서 왜곡된 사실이 바로잡히게 될는지는 참으로 의문입니다. 우리 국민의 이런 외침과 요구가 있는지는 벌써 수십 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과거역사를 숨기지 않고, 해방과 관련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제합방이 되던 1910년 11월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역사책들을 불태워버렸으며, 1922년부터는 ‘조선사편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우리 역사를 왜곡해서 썼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일본인 학자들이 기록한 우리역사는 우리 민족의 열등성과 후진성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고 우리의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구실을 삼고, 그들의 통치를 합리화하려고 감행한 역사 왜곡일 것입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고 자기들이 그나마 우리를 보호하고 통치해 주었기 때문에 식민치하에서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는 왜곡된 사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제 때 일본에 유학했던 유학생들 가운데 일본인 역사가들이 조작한 조선사를 읽고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져 자살한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사의 비극의 한토막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불행했던 역사를 올바로 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일본의 노예였었다.’는 이 기막힌 역사를 되풀이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흔적과 증거를 폐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우리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망각’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민족은 부끄러운 민족성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부각시켜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야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이야기가 매우 길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인간성이란 면에서 야곱은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이 많지 않은 인물인데, 창세기 저자는 왜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야곱을 더 많이 소개하였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야곱의 삶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삶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척박한 삶의 현실을 전투적으로 바꿔가는, 바꿔 말하면 불모지를 옥토를 바꿔가는, 사막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꿔가는 그런 특이한 모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민족성에 가장 어울리는 유태인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야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쟁취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언제나 맨주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제몫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생으로 태어났고, 언제나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싸워서 제몫을 만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에서보다 늦게 이 땅에 첫발을 디딘 것처럼 주변국들에 비해서 그 출발이 상당히 늦었던 민족이었습니다. 세상에 늦게 나온 만큼 제몫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입성 후에 차지한 땅들도 대부분이 타민족이 쓸모없어서 내버린 땅이었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아무개의 발꿈치를 붙잡다’라는 관용구에서 나온 이름인데,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자기이익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붙잡고 씨름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나서야 천사를 놓아준, 그러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얻은 이름입니다. 누구하고든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야곱, 형 에서하고도 싸워야 했고, 아버지 이삭과도 싸워야 했고, 외삼촌 라반과도 싸워야 했고, 심지어 하나님과도 싸워야 했던 야곱이었습니다. 싸우지 않고서는 제몫을 차지할 수 없었던 야곱은 바로 오늘날 유태인이 누군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랑자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결국 80여명의 식솔을 거느린 거부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2,610년 전부터 남의 나라에서 방랑하기 시작했고, 주후 70년 이후부터는 무려 1878년간을 모든 유태인이 남의 나라에서 얹혀사는 자들이었지만, 1948년 건국이후에는 우리 대한민국보다 두 배나 더 잘사는 강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총칼을 손에 들고 이웃 아랍연맹과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했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일생처럼 굴곡진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끄러운 민족성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부각시켜왔습니다.
셋째, 척박한 환경과 험난한 세월을 산 야곱의 삶도, 불행한 역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세월도, 불행한 세월이었기보다는 오히려 축복의 세월이었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갖는 역사인식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의 삶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신명기 6장 20-25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21절),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급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신 분‘(22절),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신 분‘(23절), 그리고 ’모든 율법을 잘 지키라고 명령하신 분‘(24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확고한 믿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성격과 같은 부끄러운 민족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 민족의 후손들을 가르쳐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부끄러운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고, 해방을 주신 민족이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3,400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해방도 그렇고, 57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건국도 하나님이 그들 민족에게 주신 축복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였다면, 그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민족이었다면, 그 민족은 결코 부끄러운 민족이 아니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성과 역사를 대표하는 야곱의 생애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생애였기에 결코 부끄러운 생애일 수 없다는 것이 창세기를 기록한 저자의 역사인식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집니다. 일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무엇이라고 기록하든지 간에, 우리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작용했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하셨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닙니다.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시킨 우리의 민족성은, 세계인들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결코 부끄러운 민족성이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은 유태인 못지않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지난날의 역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뒷거름질치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이사야 2장 22절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존권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의 팔과 그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유태인들이 과거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야곱이 라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몫을 철저하게 챙겨 거부가 되었듯이, 유태인들은 국제사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끊임없는 자기능력개발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과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짐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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