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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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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417 2005.10.28 17:27

본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17)
Why Is the Christian Church?

‘탱크주의'란 광고 전략을 채택하여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정보통신부 장관과 대우전자 회장(91-97) 및 KAIST교수(72-74)를 역임한 배순훈 박사는 평소의 지론이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배순훈 박사는 KAIST에 '탱크강의실-기본으로 돌아가자!‘란 문구가 새겨진 현판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의 평소의 지론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신약성경교회로 돌아가자!'(Back to the Simple New Testament Christianity!) 입니다. 이는 잘못된 교회전통을 고치고, 기독교의 기본인 사도전통에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우리도 '00 그리스도의 교회-신약성경교회로 돌아가자!’라 새긴 현판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신약성경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자(漢字)로 ‘기독교회’란 뜻으로써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 곧 ‘Church of Christ’란 뜻이고, 둘째는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을 주체로 삼는 교회, 곧 ‘Christian Church’란 뜻입니다. 이렇게 교단명칭을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전 세계 모든 주님의 교회들이 이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란 통일된 이름아래서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전 세계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통일된 이름아래서 일체가 되는 모범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범을 바르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지침이 필요한데 그것이 신약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가지 운동을 펼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 Movement)이요, 둘째는 ‘신약성경교회 운동’(New Testament Christianity Movement)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어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이라고 부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배워서 확신한 것을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것을 누구한테 배웠는가를 알아야한다는 것이고, 넷째는 배워서 알고 확신한 근거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을 배우고,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디모데가 그 성경말씀을 뉘게서 배웠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것을 뉘게서 배웠는가를 알고 있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성경말씀을 누구한테서 배우셨습니까? 어느 목사에게서 배우셨습니까? 어느 신학자한테서 배우셨습니까? 어느 교단에서 배우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자랑하는 것들이 어디에서 온 것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교회에 보낸 서신서들에서 “배운 것”이란 말과 “전한 것”이란 말을 여러 차례 쓰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와 누가 전하였는가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의 전례를 전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올바른 계보요, 전통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주께 받아서 사도들이 전한 것 이외의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사도 요한도, 사도의 가르침 이외의 것을 가르치는 자를 일컬어, 거짓선지자요, 적그리스도다고 단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사도들이 행한 예배전통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을 일컬어 이단이라고 하였습니다. 후대의 교회들이 신약성경 27권의 정경성 여부를 결정할 때에 기록으로 남은 문서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이나 예배전통과 일치하는가를 보고 결정하였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즉 사도전통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성경 27권이 주께 받은 것을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의 말씀이요, 전통이요, 계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어떨까요? 본문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을 다시 한번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성경’이란 단어는 십중팔구 구약성경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디모데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27권으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즉 사도 바울이 구약성경을 염두에 두고 ‘성경’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면, 구약성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고; 둘째, 그것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이며; 셋째, 성도들을 온전케 만들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의 이 세 가지 말씀에서 분명하게 알아야할 것은 구약성경이 성도들을 온전케 만들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조건은 그 속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다.”는 말씀을 바꾸어 말씀드리면, 우리가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에 구약성경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에 구약성경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해석방법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해석방법이었고, 신약성경 저자들의 해석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의 범위 안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갈라디아서 1장 8-9절의 말씀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활동할 당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과 유대주의에 젖어 살았던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를 “다른 복음”이라고 단호하게 배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배전통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단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평소의 지론이 '단순한 신약성경교회로 돌아가자!'이다 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는 잘못된 교회전통을 고치고, 기독교의 기본인 사도전통에로 돌아가자는 뜻이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곧 사도전통에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크다고 참된 교회일까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참된 교회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죤 깔뱅과 같은 개혁가들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펼친 때에 이미 기독교는 1,5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고, 지중해와 흑해 연안의 온 동․서방 세계가 천주교회와 동방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거대한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시급히 요구됐던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 참된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받고 받지 못하는 열쇠가 교회의 크기나 역사의 길고 짧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믿음생활이나 신학과 관련된 문제들이 생겼다고 했을 때에 누구한테 물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신약성경에 물어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즉 사도전통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배를 ‘주의 날’인 주일에 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구약성경 십계명의 명령대로 안식일인 토요일에 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누구한테 물어야겠습니까? 당연히 신약성경에 물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주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즉 사도전통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의 날’에 모여 예배드렸는가, 아니면,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는가를 신약성경에 물어보면 올바른 해답이 나올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해답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입니다. 그들은 그 날을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안식일 교회(Messianic Jewish Church포함)는 잘못된 것입니다. 안식일예배가 장차 올 ‘주일예배’의 모형 또는 그림자란 점을 믿지 않는 것은 사도들의 예배전통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 예배를 고집하는 것은 바울이 저주한 ‘다른 복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할례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할례가 비록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시행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유대교의 전통이지 사도들의 전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할례를 의무로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도들의 전통에는 성만찬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부탁을 일 년에 몇 차례나 시행하였습니까? 신약성경의 해답은 사도들이 매주 모일 때마다 주의 만찬을 기념하였다 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고, 20장 7절에서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이란 주의 날 곧 일요일을 말합니다. 교부들의 글과 기독교 역사는 매주일 성만찬이 사도들의 전통이었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성경대로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매주일 거행하는 성만찬이 은혜롭든, 은혜롭지 못하든, 사람들은 왜 그런 이유를 들어 주께 받아 전한 사도들의 전통을 외면하려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성만찬을 자주하면 너무 흔한 일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매주일 드리는 예배는 흔한 일이 아닐까요? 매주일 하는 설교는 흔한 일이 아닐까요? 매주일 하는 헌금은 흔한 일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론은 교리적인데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서 교인들에게 이런 책망을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책망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7절에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고 하셨고, 8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킨다.”고 하셨고, 또 13절에서는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유전”이란 말은 바리새인들이 만든 전통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들이 만든 교회전통 또는 교단전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율법을 아는 지식과 행하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했을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기대했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당시 그들은 율법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과 전통을 더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분을 일컬어 ‘귀신들린 자’(요 7:20; 마 12:2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고 하셨습니다.
교회전통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크다고 다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역사가 오래됐다고 다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대로가 아닌 전통이 있다면, 아무리 크고, 또한 그 전통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됐다하더라도 성도의 기본인 신약성경교회전통에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00 교회는 신약성경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사도들의 예배전통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약성경을 표준삼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뿐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빛과 생명이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비록 적은 수일지라도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출발한 교회란 점을 잊지 마시고 힘써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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