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인 본 교회가 설립된 것은 한국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당시인 1951, 1·4후퇴 이후였다. 당시 부산으로 피난 와 있던 이흥식 전도자와 몇몇 형제 자매들이 1951년 2월 4일, 용두산 일대에 교회를 설립하여 첫 예배를 드리고 {영주동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교회가 지금의 우리 교회인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의 시작이었다.
영주동 교회는 전쟁과 궁핍에 시달리던 부산 거주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아울러 하나님 사랑의 본을 보여 주며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영주동 교회가 설립된 이후 2년 뒤인 1953년 10월에 유명한 부산 대화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때에 소실된 교회 가운데에는 용두동 그리스도의 교회(유악기)가 있었는데, 성도들 중 상당 수가 우리 교회에 합류하여 영주동 교회는 급작스럽게 양적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이 교회의 이름을 {부산 중앙 그리스도의 교회}로 바꾸게 된 원인이었다.

첫 예배를 드린 1951년 2월 첫째 주일은 음력 설날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따라서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으니 그 감회는 특별히 남달랐을 것이다

 


설립초기의 중앙 교회는 교회 개척에 무척 열심을 내었다. 서면 지역에서는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7,8명 있었다. 그러자 교회는 그들이 신앙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거리상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고, 아울러 선교적 차원의 배려하에 교회 개척을 결의하였다. 1952년 11월 2일에는 본 교회의 초대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김관평 씨를 개척 전도자로 파송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면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한편 부산 대화재 사건의 이재민들은 시 당국의 구호정책으로 인하여 영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 중에는 중앙 교회의 성도들도 끼어 있었다.이들을 중심으로 몇몇 전도자들이 교회개척을 시도하였고, 1956년 10월에는 중앙 교회 3대 전도자였던 박경동 씨를 파송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청학동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당시 본 교회의 성도 분포는 북한에서 피난 온 성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당시 교회의 특징은 복음과 함께 일용할 양식을 동시에 공급하였다는 점이다. 전쟁과 화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희망과 함께 거처할 처소 및 양식이 절박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부설 기관으로 {승리 모자원}을 설립하여 전쟁 과부와 고아들의 구제에도 한 몫을 담당하였다.[주: 초기에는 박경동 전도자와 교회의 자매였던 김춘희 씨가 함께 수고하였다. 김춘희 씨는 후에 승리 모자원이 공식적으로 발족한 뒤에 초대 원장에 취임하여 수고하였는데, 퇴임 이후 현재에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교회 박준득 집사의 부인되시는 최정자 자매님의 어머니시다.] 이후 {승리 모자원}은 1957년에 '부산진구 연지동 301번지'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들과 함께 이주한 성도들을 위하여 본 교회는 4대 담임 전도자였던 김광수 씨를 파송하여 교회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지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한편 중앙 교회는 {승리 모자원} 외에도 당시의 난민 및 이재민들을 위하여 무료 급식소를 설립하여 우유 및 양식 등을 공급하였다. 이렇게 중앙교회는 대 사회복지사업에도 참으로 열심을 다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에도 최선을 다하였다

 

한편 본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예배당을 건축하는 데는 몇 번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그 후 초량동, 영주동 등에 부지를 마련하여 몇 차례 이주하며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1997년 7월에는 드디어 현재의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교회 설립 초기, 한국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건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건축을 위해 필요했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 있는 형제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원과 본교회 성도들이 반지, 목걸이 등, 귀중품을 헌물하는 등, 헌신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 건축한 예배당 건물을 위하여 연보했을 때는 전 교인들이 적극 동참하여 한푼도 빚을 지지 않고 단 시일 내에 완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이 우리 교회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또 다른 일을 추진할 때에 어떤 일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요인이 된다

 

결론적으로 중앙 교회를 한마디로 특징지어 본다면, 부산시의 복음화, 특히 신약성서에 나타난 신약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 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점과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여 온 교회였다는 점이다. 서술했듯이 중앙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청학동 교회[주: 청학동 교회의 교역자 박경동 씨는 본 교회 제3대 전도자를 역임한 이후 1956년에 청학동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후로 오늘까지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 가운데 가장 연장이시다. 그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특히 영남 지역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다.] 서면 그리스도의 교회[주: 김관평 전도자는 그 후 1976년 5월 25일, 본 교회의 제9대 전도자로 취임하여 1990년 5월 31일 퇴임할 때까지 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다가 1993년 2월 23일에는 제주 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전도자로 취임하여 1997년에 퇴임하기까지 교회를 성장 발전시켰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에 대한 그의 공로는 적지 아니 지대하다. 현재는 1998년 11월 1일부로 개척 교회인 서귀포 그리스도의 교회(전도자 곽해규)에서 협동하며 교회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서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종배 전도자를 위시하여 다섯 사람의 장로들과 성도들이 신약교회의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성지 교회[주: 처음에는 김광수 전도자가 중앙 교회와 승리 모자원을 오가며 말씀을 증거하다가 후에 성지 교회를 개척하면서 중앙 교회 전도자를 사임하고 성지 교회에서 복음 사역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후에 성지 교회의 후임 전도자로 원종호 전도자가 취임하여 오늘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다. 현재 김광수 전도자는 동대전 교회(교역자 정기덕)에서 장로로 수고하고 있는데, 본 교회 역사의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 역사 편찬 작업에 기꺼이 협력하여 도움을 주었다.]가 개척되었고, 지금까지 그 교회들과 함께 중앙 교회는 부산과 영남, 더 나아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지 교회가 개척된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교회 개척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와중에도 전국에 산재한 많은 농촌 교회, 개척 및 미자립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 기관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기도와 재정적 도움을 주면서 협력해 왔고, 1991년도에는 목포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개척을 위해, 1994년도에는 개척 초기였던 제주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당 마련을 위해 물심 양면으로 동참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시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중앙 교회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이 사회에 사랑의 수고를 보여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약진하여야 할 것이다.[참고: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우리 교회의 반세기사}, 39-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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